한일 국제 결혼, 파혼 후의 감정과 극복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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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제 결혼, 파혼 후의 감정과 극복 방법

2024/10/20
2024/11/7

일본 여자친구와 일본에서 약 4년 동안 동거를 하고 파혼하게된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서로의 나이를 고려하게 되니,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평범한 가정의 장남으로 자라, 부모님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저와 동생들을 대학까지 뒷바라지해 주셨고, 제 인생에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스스로 일본에서 취업 자리를 찾아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도쿄는 월세, 공과금, 세금이 비싸고, 월급에서 세금을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습니다. 타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고, 저축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가끔은 여행을 다니며 여유를 찾으려 했지만, 경제적인 압박은 여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의 배우자에 대해 깊이 고민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자친구와 함께 지내면서 중간중간 많은 다툼이 있었지만, 점차 둘만의 공동 가치관이 형성되었고,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여자친구와 함께 사이타마현 가와고에(川越)에서

한국에 방문했을 때는 친구들에게도 그녀를 소개했고, 저희 부모님께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았지만, 제 마음속에서는 이미 여자친구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부모님께 받은 사랑 덕분에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지만, 여자친구의 가정환경은 예상보다 큰 장애물로 다가왔습니다.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를 넘어, 더 깊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자친구는 어릴 적부터 가정환경에서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큰 결핍을 안고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형제 간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고, 이로 인해 그녀의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그녀의 내면적 상처가 점점 더 두드러지면서, 저도 결혼에 대한 망설임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문제들이 우리의 관계를 흔드는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함께 생활하면서 생활비가 점점 늘어났고,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학자금 대출 외에도 빚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도, 가까운 나라지만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있었고, 이런 차이를 맞춰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의 삶을 계획하려고 할 때마다 현실적인 고민들이 쌓여갔습니다. 

집 문제, 육아 계획, 부모님의 노후 계획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았습니다. 여자친구는 어느정도 모아둔 돈이 있었지만, 저는 모아둔 돈이 거의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장래에 대한 부담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이 결혼이 과연 현실적일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파혼이라는 어려운 결정

일본에서는 결혼식을 생략하고 혼인신고만 하는 경우가 많아,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저희도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여자친구도 이 부분에 동의했지만,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조금 다른 생각이었습니다. 

저희집안의 종교는 천주교입니다. 부모님께서는 가볍게라도 관면혼배성사(비신자와 세례받은 신자 간의 혼인성사)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역시 어릴 때부터 성당을 다녀왔지만, 상대방에게 종교적인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례받은 사람끼리 하는 정식 혼인성사가 아니었기에 관면혼배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해 여자친구를 설득했지만, 그녀는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 설득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여자친구는 회사 생활에서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었고, 더불어 부모님과의 갈등도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그녀는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었고, 그 영향으로 우리 관계도 불안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친구의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제게 의지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처음엔 그녀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상황이 악화되면서, 저도 모르게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불안과 분노, 답답함을 다 받아주려 했지만, 저 역시 그녀의 감정을 감당하는 데 한계를 느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했지만, 결국 저도 감정적으로 바닥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베푸는 것에도 한계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행복한 결혼을 꿈꿨지만, 서로의 상황과 현실적인 문제들이 우리를 점점 더 멀어지게 했습니다.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며 결혼 준비를 이어가려 했지만,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결국 결혼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현실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각자의 인생뿐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얽히면서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과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은 정말 아픈 결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느낀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속 평화를 얻기위해 방문한 명동성당

파혼 후 겪게 되는 감정

제 안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솟구쳤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무기력함’이라는 거대한 벽이었습니다. 마치 그 벽이 제 인생의 길을 막고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지난 시간들이 헛된 것처럼 느껴졌고,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과 추억에 대한 상실감이 너무 컸습니다. 

일본 취업이라는 목표를 이루고 나서, 그다음 인생의 목표로 결혼을 향해 달려가던 중 모든 것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갑자기 일본에서의 생활이 더 외롭게 느껴졌고, 처음 일본에 취업했을 때보다 더 깊은 외로움이 찾아왔습니다.

몇 번의 연애와 이별을 경험했기에, 씁쓸한 감정과 후회, 분노, 슬픔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파혼 후의 이별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특히 결혼을 전제로 한 동거 후의 이별은 그 아픔이 몇 배로 더 깊게 다가왔고, 밤마다 찾아오는 외로움과 상실감 때문에 매일밤 눈물을 흘리다 잠에 들었습니다.

주변의 지원

다행이도 이 사건과 동시에 회사에서 담당했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서 장기휴가를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한국 본가로 돌아갈 기회가 생겼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 속에 쌓였던 감정을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지인과의 만남이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과거 한국에서 일본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형님이었습니다. 그때 저와 형님은 각자의 미래를 준비하느라 바빴지만, 틈틈이 깊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주말마다 제가 좋아하던 홍대의 일식집이나 감성적인 카페를 형님과 함께 다니며, 저만의 루틴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제가 일본에 취업한 뒤에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형님의 소식을 종종 접했는데, 그때부터 형님은 본격적으로 한국의 감성 카페 투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서로 바쁜 일상 속에서 연락은 뜸해졌지만, 최근 결혼한 아내분과 함께 연남동에 카페를 가오픈했다는 소식을 보고, 마침 한국에 있는 김에 그동안 못 만났던 형님을 찾아가고 싶어, 일본에서 사온 오미야게(선물)와 함께 연락도 없이 무작정 정식 오픈날에 맞춰 카페를 방문했습니다.

카페이름은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을 줄여서 일기

아내분과는 그날 처음 만났는데, 저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빠한테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덕분에 저희가 이 카페를 열 수 있었답니다. 너무 감사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놀랐습니다. 형님과 주고받았던 소소한 이야기들과 함께 나눴던 시간들이 이렇게까지 큰 의미가 있었다니. 그동안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는데, 뜻밖의 감사 인사를 들으니 마치 제가 해온 작은 일들이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었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심해 어딘가에 잠겨 있던 제 자존감이 서서히 떠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고, 누군가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내가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은,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고 치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형님네 부부와 함께

파혼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막상 형님과 아내분에게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제가 했던 선택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충분히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은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저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해 주었습니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너만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들이 위로가 되었고,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었습니다.

감정을 극복하기 위한 첫 걸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혼자가 되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홀로 설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처음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고, 외로움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점차 그 시간을 활용해 그동안 미뤄왔던 운동과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일상적인 루틴을 다시 세우며 감정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산책을 하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새로운 책을 읽으며 사색에 빠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감정과 느낀 점을 일기로 남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락가락하는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천천히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조금씩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의 생활이 언젠가는 끝나고, 다시 함께할 거라는 무의식 속에 사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확률은 낮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이성을 되찾아 내가 이곳에서 계속 혼자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엄청난 공포감이 몰려온다. 과거는 마치 꿈처럼 느껴지고, 괴로웠던 기억은 희미해지며 행복했던 순간들만 떠오른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아직도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나를 증명하는 일기-

한일 국제 결혼 준비 과정에서 느낀 교훈

같은 국적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라온 환경이 다르면 많은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국적과 문화적 배경이 다른 두 사람이 함께하려면 더 많은 소통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또한, 서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합의했다고 생각했더라도, 상대의 가정환경 등 현실적인 문제로 결혼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말처럼, 단순히 사랑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혼자 감당하려고 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운이 좋다면 자존감을 회복할 기회가 올 수도 있을 테니까요.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저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믿고, 천천히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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